[ JMS / 정명석 목사의 설교 ] 줘도, 모르면 실패한다. 안 자만 믿고 행하여 주를 맞고 기뻐한다 / 이사야 7장 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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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7장 14-15절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오늘은 하나님이 ‘메시아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4000년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이 보낼 메시아>를 기다리던 구약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메시아 예수님>이 왔을 때 맞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갑자기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구약 종교인들이 추종하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예언하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7:14-15)

또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시기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하시며,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태어난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 미가 5장 2절 말씀입니다.

이 밖에도 하나님은 구약 종교인들이 추종하던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해 놓고,

그 예언대로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구약의 유대 종교인들은

그렇게도 ‘메시아’를 기다렸으나 결국
<하나님이 보낸 예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메시아>가 왔어도 못 맞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을 이루셨고

이스라엘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믿지 않고 배척하며 핍박해도
<하나님의 역사>는 유유히 흘러가면서 뜻을 다 이룹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약속대로 주셨어도, 모르면 실패하고
안 자만 믿고 행하면서 주를 맞고 기뻐하게 됩니다.
모르면, 옆에 있어도 맞지 못하고 사니
모두 다시 알고 깨닫고 행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과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를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기 바랍니다.

[ JMS / 정명석 목사의 2016년 12월 25일 주일말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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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MS / 정명석 목사의 설교 ]해라. 하지 마라. 전능자 하나님의 말에 절대 순종하여라 / 요한복음 8장 51, 요한복음 14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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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요한복음 8장 51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보낸 메시아나 선지자들이나 일을 맡긴 자들에게
어떤 일을 놓고 말씀하실 때
“해라.”, 혹은 “하지 마라.” 하고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행하면 ‘그리도 중하고 귀한 말씀’이며,
어느 때는 ‘삶과 죽음이 좌우되는 것’도 있고,
어느 때는 ‘복과 화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삶과 죽음, 최고 좋은 복과 최고 나쁜 화가 좌우되는 말씀>인데도

왜 ‘내용’은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실까요?

‘내용’을 말해 줘서 말씀에 순종하면
전능자의 <말씀>을 보고 순종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보고 그것을 중심하여 행한 것이 됩니다.
<내용>이 ‘화’를 당하는 것이라서 순종하거나,
<내용>이 ‘복’을 받는 것이라서 순종한다면
<생각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그 ‘내용’에 둔 것이 됩니다.
고로 <말씀의 권위>를 중심하지 않으니
그것이 곧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또 왜 하라고 하는지,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미리 알려 주면 ‘내용’을 의식하니
오히려 <할 것>도 못 하게 되고 <안 할 일>도 하게 됩니다.

그러니 <내용>을 궁금해 할 것 없이
하나님이 “하여라.”, 혹은 “하지 말아라.” 하시면,
<전능자의 말씀>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즉시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의 권위를 세우는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 JMS / 정명석 목사의 2016년 12월 18일 주일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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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MS/정명석 목사의 수요설교 ] – 영적 차원을 높여라 / 고린도전서 13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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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고린도전서 13 11

『내가 <어렸을 >에는말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오늘 성경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어린아이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 말씀과 같이

생각도 행실도 차원이 낮을 때는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으나,

성장하고 차원이 높아지면 ‘어린아이의 것’을 버리고

차원 높게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게 됩니다.

로마서 8 5~8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사망이요,

     <영의 생각>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육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차원이 낮아서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차원이 높아서입니다.

<고양이 차원>은 낮습니다. <치타 차원>은 높습니다.

기능도, 행함도, 사냥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개미 무게>는 가볍습니다. <코끼리 무게>는 무겁습니다.

<무게>로 ‘차원이 결정’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도 ‘생각과 행위의 차원’으로 결정됩니다.

<시력>을 보세요. <자기 시력>만큼만 보이지요?

그 이상은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영의 차원>도 그러합니다.

<자기 영의 차원>만큼만 보이고 깨달아집니다.

인간은 ‘차원’대로 누리고 기뻐합니다.

<차원>을 높여야 ‘좋은 것’을 알고 행하게 되니

힘들어도 ‘자기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차원을 높이려면 먼저 <말씀>을 깊이 보십시오.

깊이 보고 알아야 깨달아져서 ‘차원’이 높아집니다.

또, <주>가 높은 차원에 계시니

<주>와 일체 되고 하나 되면 <주>를 따라서 같이 차원이 높아집니다.

모두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최고의 차원’으로 매일 오르기를 축복합니다.

 [ JMS / 정명석 목사의 2016년 12월 14일 주일말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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